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기독교 문화관은 ‘변혁적 문화관’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변혁적 문화관을 옹호하는 입장에는 신칼빈주의, 바울에 대한 새관점주의, 이머정교회주의 등이 있습니다. 변혁적 문화관의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은 성경 이야기를 창조, 타락, 구속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즉 구속을 창조의 회복으로 봅니다. 이는 창조때 아담에게 맡겨진 문화명령이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수행될 수 없게 되었는데, 구원받은 교회가 최초의 아담에게 주어진 문화명령을 다시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혁적 문화관은 기독교인의 문화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문화 활동을 구원활동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치우진 면이 있습니다.
반드루넨은 이 책을 통해 ‘두 나라 교리’로 불리는 관점을 가지고 ‘변혁적 문화관’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면서, ‘변혁적 문화관’의 잘못을 교정하고, 더욱 성경적이며 전통적인 개신교 내지 개혁주의적 문화관을 제시합니다. 반드루넨이 말하는 ‘두 나라 교리’란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에서 시작되고, 루터와 칼빈이 주도한 개신교 종교개혁에서 발전되고, 종교이후 개혁주의(칼빈주의)에서 더욱 원숙해진 기독교 문화관을 말합니다.
‘두 나라 문화관’은 변혁적 문화관과 같이 문화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변혁적 문화관’과는 달리 문화활동 자체를 구속활동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문화활동(창조)은 가치있는 활동이기는 하지만 구원(새창조)과는 관계없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만 한시적으로 지속되는 것으로 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단체와도 다른 천국백성으로서 교회가 하는 예배, 친교 등의 활동은 새창조 즉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해야 할 일을 이미 시작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하는 공적예배와 성도로서의 친교나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들은 특별은혜와 관련된 일들로서 일반은혜와 관련된 정치, 경제, 사회 활동등과는 분명 구별되는 활동들로서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반드루넨의 이 책은 루터와 칼빈의 개신교 종교개혁과 종교개혁이후 개혁주의(칼빈주의) 전통의 기독교 문화관을 우리 시대에 좀 더 분명하고 알기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신칼빈주의, 새관점, 이머징 교회 운동 등에 의해 소개된 기독교 문화관을 다시금 재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됩니다. 그동안 신칼빈주의, 새관점, 이머징 교회 운동을 통해 ‘변혁적 문화관’만을 소개받고 이러한 ‘변혁적 문화관’을 가졌던 분들은 이 책이 소개하는 전통적인 개신교와 개혁주의 문화관을 소개받고, 이 두 가지 문화관을 비교해서 연구해보고, 어느 견해가 더욱 성경적이고 바른 문화관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신칼빈주의, 새관점, 이머징 교회 운동 등에 의해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를 기독교적으로 바꾸자고 하는 ‘기독교 국가운동, 기독교 성시화 운동, 기독교 고지 점령론’ 등이 왠지 성경과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그 이유가 무엇때문이었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개신교 전통, 개혁주의 전통이 말해주는 두 나라 교리에 의해 불신자들과 함께 하는 문화 활동을 왜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일시적이며 한계가 있는 활동으로 보아야 하는지, 왜 교회의 예배와 친교와 선교적 활동이 새창조에 속한 영원한 활동으로서 더욱 가치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 관점을 배울수 있게 되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
데이비드 반드루넨 지음
윤석인 옮김(부흥과개혁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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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권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기독교 문화관은 ‘변혁적 문화관’이라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변혁적 문화관을 옹호하는 입장에는 신칼빈주의, 바울에 대한 새관점주의, 이머정교회주의 등이 있습니다. 변혁적 문화관의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은 성경 이야기를 창조, 타락, 구속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즉 구속을 창조의 회복으로 봅니다. 이는 창조때 아담에게 맡겨진 문화명령이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수행될 수 없게 되었는데, 구원받은 교회가 최초의 아담에게 주어진 문화명령을 다시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혁적 문화관은 기독교인의 문화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문화 활동을 구원활동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치우진 면이 있습니다.
반드루넨은 이 책을 통해 ‘두 나라 교리’로 불리는 관점을 가지고 ‘변혁적 문화관’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면서, ‘변혁적 문화관’의 잘못을 교정하고, 더욱 성경적이며 전통적인 개신교 내지 개혁주의적 문화관을 제시합니다. 반드루넨이 말하는 ‘두 나라 교리’란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에서 시작되고, 루터와 칼빈이 주도한 개신교 종교개혁에서 발전되고, 종교이후 개혁주의(칼빈주의)에서 더욱 원숙해진 기독교 문화관을 말합니다.
‘두 나라 문화관’은 변혁적 문화관과 같이 문화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변혁적 문화관’과는 달리 문화활동 자체를 구속활동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문화활동(창조)은 가치있는 활동이기는 하지만 구원(새창조)과는 관계없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만 한시적으로 지속되는 것으로 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단체와도 다른 천국백성으로서 교회가 하는 예배, 친교 등의 활동은 새창조 즉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해야 할 일을 이미 시작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하는 공적예배와 성도로서의 친교나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들은 특별은혜와 관련된 일들로서 일반은혜와 관련된 정치, 경제, 사회 활동등과는 분명 구별되는 활동들로서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반드루넨의 이 책은 루터와 칼빈의 개신교 종교개혁과 종교개혁이후 개혁주의(칼빈주의) 전통의 기독교 문화관을 우리 시대에 좀 더 분명하고 알기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신칼빈주의, 새관점, 이머징 교회 운동 등에 의해 소개된 기독교 문화관을 다시금 재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됩니다. 그동안 신칼빈주의, 새관점, 이머징 교회 운동을 통해 ‘변혁적 문화관’만을 소개받고 이러한 ‘변혁적 문화관’을 가졌던 분들은 이 책이 소개하는 전통적인 개신교와 개혁주의 문화관을 소개받고, 이 두 가지 문화관을 비교해서 연구해보고, 어느 견해가 더욱 성경적이고 바른 문화관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신칼빈주의, 새관점, 이머징 교회 운동 등에 의해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를 기독교적으로 바꾸자고 하는 ‘기독교 국가운동, 기독교 성시화 운동, 기독교 고지 점령론’ 등이 왠지 성경과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그 이유가 무엇때문이었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개신교 전통, 개혁주의 전통이 말해주는 두 나라 교리에 의해 불신자들과 함께 하는 문화 활동을 왜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일시적이며 한계가 있는 활동으로 보아야 하는지, 왜 교회의 예배와 친교와 선교적 활동이 새창조에 속한 영원한 활동으로서 더욱 가치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 관점을 배울수 있게 되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